기적처럼 800년을 버텨낸 한국의 보물

출처: 매경 DB

해인사 대장경판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온전한 상태로 보존된 인쇄 목판입니다.

1251년 완성된 이후 800년 간
숱한 위기를 겪었는데요.

이를 이겨낸 과정은
마치 기적과도 같습니다.

백성의 힘으로
지켜내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상륙 2주 만에 경상도 성주로 진입합니다.

성주 서쪽 가야산엔
대장경판을 보관한 해인사가 있었는데요.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일본군에게
대장경판이 약탈당하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홈페이지

그런데 그때,
곽재우와 김면, 정인홍이 이끄는 의병
승려 소암을 중심으로 한
승병이 일어났습니다.

5,000여 명의 의병과 승병은
2만 왜군을 격퇴하고
해인사 대장경판을 지켜냈습니다.

우리 것이 탐났던
일본

사실 일본은 조선 건국 초기부터
해인사 대장경을 차지하려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불교를 탄압했던 조선과 달리,
비슷한 시기 일본에선
불교가 크게 융성했기 때문인데요.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홈페이지

일본은 태조 원년부터 중종 34년까지
87차례나 사신과 토산물을 보내며
대장경 서적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군사를 끌고 가 약탈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고,
다른 국가를 사칭해 받아내려 하기도 했죠.

태종과 세종 때는 왕명으로
대장경판을 넘겨줄 뻔했으나
대신들이 반대해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빛나는
선조들의 지혜

대장경이 지금까지 보전될 수 있었던 건
선조들의 노력과 함께 뛰어난 기술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입니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대장경 보관에 최적화된
과학적인 설계를 자랑하는데요.

출처: 매경 DB

남과 북의 창 크기를 달리해
통풍을 조절하고,
바닥에 숯과 소금을 깔아
습도를 최소화했습니다.

덕분에 6778권,
8만 1532개의 경판으로 이뤄진 대장경판이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시련의 연속,
그러나…

대장경의 역사는
평탄치 않았습니다.

숙종 때부터 고종 때까진
해인사에 일곱 번이나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이
대장경을 통째로 갖고 가려했고,
한국 전쟁 땐 폭격 위기를 맞기도 했죠.

출처: 매경 DB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현존하는 유일한 대장경판으로 남아있는
해인사 대장경판.

한국 불교의 가치와 함께
조선의 뛰어난 인쇄 기술을 보여주는
문명의 집약체가
오늘날까지 전해져 온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