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표절의 문제일까? 원신의 성공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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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_게임역사를 뒤흔든 풍운아들

단순히 표절의 문제일까? ‘원신’의 성공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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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2. 23:4419,971 읽음

지난 9월 28일부터 글로벌 서비스를 시작한 미호요의 ‘원신’은 서비스 전부터 게임 커뮤니티에서 수많은 논쟁을 낳았다. 주로 이런 논쟁의 포커스에는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등 수많은 게임을 베꼈다는 비난, 그러니까 소위 ‘표절’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었다. 출시 직후에는 백도어 논란에 휩싸여 다시 한번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은 ‘원신’은 예상 외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글로벌 출시 후 4일만에 모바일 플랫폼에서 1700만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출시 2주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무려 1억달러에 달하는 누적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PC와 콘솔 버전의 매출을 더하면 훨씬 매출 규모가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에서 개발한 오리지널 IP 게임 중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물론 ‘원신’의 출시 후에도 다수의 게임 리뷰어나 유저의 반응은 ‘원신’ 출시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뻔뻔한 중국산 표절 게임’ 이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평가나 리뷰가 유튜브와 게임 커뮤니티를 막론하고 쏟아졌다. 그 말이 전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뻔뻔한 중국산 표절 게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원신’이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하기에는 또 무리로 보인다.

비상식량이 너무 귀여워서 성공을 거뒀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다

흔히 말하는 ‘표절 게임’의 불분명한 정의는 둘째 치고, 사실 유명 게임을 대충 베껴 만든 게임은 지금도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 중에 이례적으로 ‘원신’이 성공을 거둔 것일까? 아니면 ‘원신’의 이면에 우리가 ‘표절’이라는 말로 넘길 수 없는 치명적인 부분이 존재하는 것일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베낀 게임?
게임업계에 떠도는 이야기 중 “베끼려면 잘 베껴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미호요가 이 말을 아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신’은 지금까지 해 본 수많은 게임 중에서도 가장 잘 베낀 게임에 속한다. 단, ‘원신’은 다른 게임의 핵심 원리를 베낀 것이 아니라, ‘분위기’나 캐릭터 모션 같은 겉모습을 너무나 잘 베낀 게임이다.

‘원신’이 가져온 다른 게임의 요소에 대한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미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너무나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욕도 잘 먹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원신’은 어디서 본 모션을 게임에 가져오는 미호요 게임의 나쁜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캐릭터의 모션이 법적으로 보호받기 쉽지 않다는 점을 알고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게임 업계에서 ‘표절’을 주장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법적으로 게임을 구성하는 아이디어에 대한 배타적인 저작권을 주장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아예 대놓고 다른 게임의 리소스(그림이나 사운드)를 그대로 가져 쓴 경우가 아니라면, 게이머의 눈으로 보기에는 명백한 표절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냥 도덕적인 면에서만 욕을 먹고 끝나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원신’이 표절 게임으로 고소를 당한다든가 하는 결말은 쉽지 않다. ‘원신’이 그런 게임의 리소스를 그대로 갖다 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비교가 되는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말할 것도 없다. 분명 분위기는 어디서 많이 본 분위기를 풍기려 애쓰고 있고, 몇몇 모션은 다른 게임에서 가져온 꼴이지만 법적으로는 ‘표절’이라 부를 수는 없을 정도로 미묘한 선을 지키고 있다.

원신이 상징하는 ‘무료 플레이 게임’의 사악한 진화
사실 일부 게이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와 ‘원신’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껍데기만 비교한 꼴이다. ‘원신’이 비주얼적인 면이나 몇몇 면에서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를 강하게 따라해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맞지만 애초에 둘은 목표로 하는 타겟도, 목적도, 깊이도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표절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어하는 분들을 위해 좀 냉정하게 말한다면, ‘원신’은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의 ‘껍데기’나 ‘냄새’정도만 풍기고 있지,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다. 게임 패키지를 하나 사서 엔딩을 보고 끝인 게임과, 지속적으로 게이머의 접속을 요구하며 유료 결제를 필요로 하는 무료 플레이 게임은 다를 수밖에 없다. 모션 등을 베낀 겉모습만 보고 무조건적으로 ‘원신’을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고, 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라 이제는 너무 지겹기까지 하다.

‘원신’의 가챠는 ‘붕괴3rd’의 그것만큼이나 토나오는 확률을 자랑한다.

대신 ‘원신’은 지난 20여년간 유행해 온 F2P, 즉 무료 플레이 게임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게임이다. F2P 게임의 숙명, 게임은 무료지만 어떻게 돈을 게이머에게서 짜낼 것인가를 엄청나게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한 게임이다. 거기에 모바일, F2P 게임이라면 일단 고개를 돌려버리는 PC/콘솔 게이머까지 포섭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게임 여기 저기서 엿보인다.

나쁘게 말하면 ‘원신’은 무료 플레이 게임의 사악한 진화라 부를 수도 있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료로 즐길 수 있는 패키지 게임의 냄새를 풍기고 있지만, 속을 열어보면 무료 플레이 게임이 언제나 요구하는 사악한 과금 구조를 그대로 품고 있다. 장비와 캐릭터가 뒤섞여 나오는 ‘매우 낮은 확률’의 가챠는 ‘원신’이 어떤 게임인지 잘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아이러니하게도 ‘원신’은 다른 게임의 많은 부분을 베끼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회사가 그대로 베끼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게임이기도 하다. ‘원신’의 강점으로 꼽히는 대규모로 성우가 투입된 음성 연기나, 고퀄리티 카툰 렌더링 그래픽은 그대로 개발비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단순히 베끼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미호요가 ‘원신’에 쏟아 부은 1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개발비가 다른 게임 회사가 ‘원신’을 쉽게 베낄 수 없도록 벽을 세운 꼴이다.

우리는 더욱 사악해지는 ‘무료 플레이 게임’에 대비하고 있는가?
개인적으로 ‘원신’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원신’에서 풍기는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하고 얼핏 비슷해 보이는 분위기나 다른 게임에서 대놓고 베껴온 모션은 별 인상을 주지 못했다. 단순히 겉모양을 베낀 그런 게임은 지금도 모바일 시장에 엄청나게 널려 있고,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나와 논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쁜 의미로 ‘시대정신’이나 다름없다.

그런 단순한 겉모습보다, 무료 플레이 게임이면서도 겉으로 보기에 꽤 패키지 게임하고 닮은 퀄리티를 뽐내고 그 이면에는 정교하게 게이머의 돈을 빨아들이는 과금 체계를 숨겨놓았다는 점이 훨씬 더 소름 돋는 부분이었다. 자신이 일종의 ‘대작’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게이머에게 심어주고, 거기에 걸린 게이머가 사악한 구조의 과금에 자발적으로 돈을 쓰게 만드는 놀라운 유도 말이다.

5성 캐릭터 없어도 당장 게임을 못 하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꼬운 느낌이 드는 지점이 반드시 다가온다. 그것이 ‘원신’의 과금 유도 전략이다.

‘원신’, 아니 ‘붕괴3rd’를 포함한 미호요 게임의 가장 사악한 부분은 사악한 확률의 가챠 그 자체가 아니라, ‘무료로도 게임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과금을 안 하면 매우 꼬운 느낌이 드는’ 그 지점에 있다. 이것이야 말로 ‘원신’이 지금까지 매출을 뽑아냈고, 앞으로 매출을 뽑아낼 지점이다. 일단 ‘원신’을 시작했다면 그러한 미호요에 덫에 걸린 셈이다. 이것이 ‘원신’을 ‘무료 플레이 게임’의 새로운 장(?)을 연 게임이라 부르는 이유다.

끝으로, ‘원신’의 문제점을 짚으려면 그러한 미묘한 느낌을 유도해 사악한 확률의 가챠를 돌리게 만드는 방식을 지적 해야지, ‘원신’을 단순히 중국 게임, 표절 게임, 쓰레기 게임이라 부르며 욕하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에야 도움이 되겠지만 그냥 겉핥기에 불과하다.

오히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깊이, 그리고 완전히 다른 방향의 ‘원신’을 두고 ‘브레스 오드 더 와일드’를 베낀 표절 게임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젤다의 전설’에 대한 모욕으로 보일 지경이다. 내가 유튜브에서 ‘원신=쓰레기 표절게임’이라는 일차원적 리뷰를 너무 많이 봐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니다.

ㅇㅇ